2010년 12월 30일 목요일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꿈의 해석>의 영화판


프로이트 <꿈의 해석>을 들여다 보다가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의 영화판이다."

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2000년을 전후한 시기가 개인적으로는 스무살을 전후한 시기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독 그 때 본 영화들 중에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다.

<고양이를 부탁해><인질><매트릭스>,<러브레터><화양연화> 등등. 몇년 더 앞으로 간다면 워쇼스키의 데뷔작 <바운드>, 왕가위의 <해피투게더><중경삼림>.

인생최초로 수집욕이 생겨서 비디오를 구하려고 노력했던 작품들이 있는데 첫번째는 <파니핑크>. 10대에 본 도리스 되리의 죽음로망-여성-독신의 키워드를 가진 이
청춘물(?)을 찾으려 한창 수소문을 하다가 포기했는데 지인이 선물해줘서 손에 넣게 되었다.(99년 이전엔 인터넷으로 쉽게 구하기는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넷엔 콘텐츠가 거의 없던 시절...) 정말 기뻤다.

99년에 개봉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2000년에 개봉한 <플란다스의 개>, 2001년에 개봉한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 세 작품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2000년대 초반이 비디오 가게가 줄도산 하던 시절이라 학교 앞을 돌아다니며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지금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지만,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어서 정작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냥 책꽂이를 볼 때마다 좋다. 저 영화들을 동시대에 봤고, 또 아마도 초판으로 나온 비디오로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물론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순 없겠지만.(경제적 가치는 아마 거의 없을 듯)






그리고 2010년 봄에 만난 김태용 감독님에게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는 팬이라고 말했다. 반응은 "아 그 10년된 영화를...(웃음)"
하지만 10년 동안 정말 하고 싶었던 말.

사설이 길었다.
그냥 읽던 부분을 인용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얼마 전 수업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사운드를 분석해 발표하느라 다시 봤는데, 거의 10년만에 다시 보아도 정말, "사랑해요, 데이빗 린치"라고 외치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토록 절묘하고 위트있게 환영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니, 그것도 꿈의 공식에 꼭 맞게. 프로이트가 꿈을 해석하는 일을 했다면, 데이빗 린치는 꿈을 구축하는 일을 한, 환상의 대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의 해석>은 이론편,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실전편, 응용편.

자, 이제 본론.
인용과 적용.



프로이트 <꿈의 해석> p.165 (선영사)

낮에 우리들이 둘 또는 그 이상의 꿈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체험을 하면, 꿈은 이 체험들을 하나의 전체로 결합한다. 즉, 꿈은 '모든 체험들을 하나로 결합해야만 하는 강제력'에 복종한다. 이를테면 내가 여름 어느 날 밤에 기차를 타고 우연히 잘 아는 두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잘 모르는 사이이다. 한 사람은 매우 유명한 의사이고, 또 한 사람은 내가 의사로서 드나들던 귀족 집안의 한 사람이다. 나는 그들을 서로에게 인사시킨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긴 여행을 하는 동안 계속 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는 어떤 때는 이쪽과, 어떤 때는 저쪽과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동업자인 의사에게는 그도 잘 아는 갓 개업한 어떤 의사를 잘 좀 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상대방은, 그 사람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그 풍채로는 좋은 가정에 드나들기는 어려울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잘 봐달라는 게 아니냐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곧 다른 사람을 보면서 그의 큰어머니-나의 여환자의 모친-의 안부를 묻는다. 이 큰어머니는 그 당시에 중병을 앓고 있었다.


이런 여행을 한 날 밤에 나는 이런 꿈을 꾸었다. <내가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한 그 젊은 친구가 부자인 귀족들이 모인 고급 사교석상에서, 기차 여행 때 또 한 사람 쪽의 큰어머니뻘 되는 노부인(꿈 속에서는 이미 고인이었다)을 위하여 매우 능란한 태도로 조사를 낭독하고 있는 장면이었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노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의 꿈은 여기서도 낮의 두 인상을 결합하고, 그것에 의해 하나의 통일된 상황을 만든 것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나오미 왓츠는 여자친구를 남자 감독에게 빼앗기고 그 감독을 꿈(또는 환상)에서 머저리로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식. 그 감독은 할리우드에 혜성같이 등장한 젊고 전도유망한 감독이었는데, 그보다 훨씬 힘센 영화제작들을 등장시켜 그 감독을 해고시키고 파산시킨다. 아주 중요한 애정문제에서는 아내가 트럭 운전기사(테스토스테론과 근육 비율이 그 감독의 50배는 될 듯한)와 바람을 피우고 그 현장을 들켰는데도 당당한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그 감독은 치졸한 캐릭터를 드러내며 우스꽝스럽게 복수하다가 트럭 운전기사에게 매를 맞고 쫓겨나게 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트럭 운전기사는 나오미 왓츠의 대리인쯤..)

이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변형이라면,
인과관계를 거꾸로 배치했기 때문에 나중에야 아주 슬픈 감정을 느끼게 하는 변형도 있다.

영화 속 현실에서 나오미 왓츠와 커플로 나오는 로라 해링(정말 레즈비언에게 여신의 이미지가 아닐까 싶은...완벽한 -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음)은 현실에선 나오미 왓츠를 배신하고 그녀 앞에서 (권력의 모든 면에서 우위인) 남자 감독과 키스하며 질투를 유발시키는, 그리하여 나오미 왓츠가 살인청부를 의뢰하게 하는, 통용되는 말로 하면 '팜므파탈' 역할이다.

그러나 영화 속 환상(또는 꿈)
에선 위기에 빠진 로라 해링을 나오미 왓츠가 성심성의껏 돌보고, 헌신적인 나오미 왓츠에게 로라 해링이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한 때 사랑하던 여자 로라해링을 살인청부한 여자 나오미 왓츠의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이다. 이미 그녀를 죽였기 때문에... 인과의 전도, 시간의 지연이 이 감정을 더욱 아련하게 만든다.

10대 때 비디오방에 가서 <이레이저 헤드>를 골랐다가 토할 뻔했던 기억을 안겨주었던
데이빗 린치 감독.. 최근에 일렉트로닉곡을 작곡까지 해서 싱글을 발표했다는데,, 페인팅에서 시작한 그의 예술적 표현이 영화를 넘어 이제 (가장 추상적이고도 심오한 궁극의 예술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음악으로까지 옮아갔다. 그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한남동의 옷가게 꼼데가르송에서 데이빗 린치전이 열리고 있다.
데이빗 린치의 단편 12 작품이 상영되고 페인팅 7점이 걸려 있단다.

1월 2일 내일까지다. 입장료는 무료. 내일 꼭 가보려고 한다.

전시명 : David Lynch - DARKEN ROOM
기간 : 2010년 11월 5일(금) ~ 2011년 1월 2일(일)
장소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39-1
문의 : 02-749-2525

http://cafe.naver.com/musicalnote1.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95581

댓글 2개:

  1. 아.. 전 92년도인가 부푼가슴을 안고 상경한 서울의 홍대 꾸덕하고 의자가 두개뿐인

    시네마 떼끄에서 화면의 거의 전부가 뿌연 해적판 피터그리너웨이의 건축가의 배 와

    영국식정원 살인사건을 보고 혼자 끼억끼억 감동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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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wilowood - 2011/01/02 00:13
    오오~ 역시,,스무살 언저리에는 좀 눈뜨이는 경험을 하는 것 같아요. 봉사가 눈 뜨듯이. 92년이라면 문화적 다양성의 측면에서 지금보다 암흑기였을 텐데, 또 그랬기 때문에 그때는 아주 소규모의 시네마떼끄가 동네마다 많았었나봐요. 선배들 얘길 들어보면 여기에도 시네마떼끄가 있었고,저기에도 시네마떼끄가 있었고. 시설이나 소스는 후지지만 언더의 정신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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