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로베르토 로셀리니 파이잔(전화의 저편, 1946)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179


전쟁의 와중에 인간은 얼마나 고통받는지, 이탈리아 사람들이 2차 대전 시 겪어야 했던 비극은 어떤 것들이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영화. <파이잔>은 6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파괴적인 전쟁의 소용돌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통과하는 이탈리아인들의 미시사를 재현하고 있다.

1. 고립된 상황에서 친구가 될 뻔한 이탈리아 소녀와 미군병사의 죽음, 2. 미군의 군화를 훔친 고아 소년, 3. 프란체스카라는 여자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미군병사, 4. 사랑하는 사람을 목숨 걸고 찾아나선 여자와 남자, 5.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포용하고 먹이는 이탈리아 수도사들, 6. 독일군에 저항한 이탈리아 민병대의 장렬한 저항과 죽음.

각각의 에피소드는 흡사 민족지 다큐 같은 외양을 띠고 사실적으로 제시된다. 시기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내레이션과 뉴스 릴의 한 장면, 화각이 넓고 대단히 많은 인물이 분주히 움직이는 설정샷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곤 한다. 인공적으로 설정되지 않은 것 같은 이런 자연스러운 배경은 바로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실제 사건처럼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배경설정 뿐만 아니라 각 장면의 연출에서도 일관되게 리얼리즘적인 표현방식을 볼 수 있다.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레지스탕스 애인을 찾아가는 여자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이 광장을 헤맬 때 보조 연기자들이 쓰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광장에서 남자의 근황을 묻고 다니는 여자가 미디엄숏으로 4-5명의 연기자들과 함께 잡히며 대사를 주고받을 때, 행인 역할을 맡은 보조연기자들은 카메라와 배우 사이를 수없이 지나다닌다. 또 주인공의 뒤에서는 내러티브와 상관없는 일들이 바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연출이 의도하는 효과는 관객이 보고 있는 장면이 통제된 상황에서 연기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회적 시간 속에서 경험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주인공과 카메라 사이를 행인들(로 분한 보조 연기자들)이 들고 나는 연출을 함으로써 사실적인 느낌을 주는 장면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의 도입, <시>의 도입부에서도 볼 수 있다. <우묵배미의 사랑>에서 안성기가 거리를 걸을 때의 표현에서도.(이 샷은 시적 리얼리즘이라 불러야 할까.)

<파이잔>의 6개의 에피소드는 연합군의 동선을 기준으로 옮겨간다.
"연합군 군대가 시칠리에 상륙했다" "연합군의 총구는 나폴리를 향하고 있었다" 등.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탈리아 민병대가 손이 묶인 채 독일군에 의해 빠뜨려지는 장면의 강물(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의)로 끝을 맺는다. 영화의 내레이션은 이들 민병대가 죽은 얼마 후 전쟁이 끝났음을 알린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뜻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파이잔>은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한 개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다. 독일군의 침략을 받은 역사를 공유하는 하나의 집단으로. 정이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로셀리니가 리얼리즘적인 연출방식을 채택한 것은 그러한 공감을 스크린 밖까지 확장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기억하고 치유하려는 의도. 그러자면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있는 중에도 '연출된 허구'라기보다 '경험된 사실'처럼 느낄 때 효과적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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