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일 수요일

로베르 브레송, 사형수 탈출하다(1956)

수도사의 경건함에 견줄 만한 명상적 정조

영화는 레지스탕스 중위 퐁텐느가 독일군에 사형수로 잡혀있다가 탈출하는 탈출기다. '이 영화는 사실이다'라고 시작하는 도입이 인상적인데 큼지막한 사건보다는 디테일한 묘사가 중점적이기 때문에 본인이나 아주 가까운 사람이 겪은 일이었으리라 추정된다.

1. 클로즈업
영화는 마지막 장면, 즉 탈출이 성공하는 결과를 위해 과정을 쌓아가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밥을 먹는 숟가락을 훔친 후 몇 개월에 걸쳐 나무판자를 느슨하게 분리하고, 탈출에 실패한 동료의 조언을 받아 환풍기 틀로 갈고리를 만든다. 이불 호청을 뜯어 로프를 만든다. 이 과정은 마치 수도사들이 성경을 베껴쓰는 반복수행을 하는 것처럼 경건하게 그려진다. 카메라는 퐁텐느의 고뇌하는 얼굴, 작업하는 손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클로즈업은 이영화의 주된 표현방식이다. 감옥의 독방에서 갇혀있는 퐁텐느를 풀샷으로 잡는 것보다 그의 얼굴만 잡는 것은 그가 '갇혀있다'는 상황보다, 그가 '(탈출을) 생각한다'는 의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2. 반복
잡히면 바로 총살당할 것이 뻔한데도 포기하지 않는 그를 보는 동료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만류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응원으로 바뀐다. 창틀에 매달려 옆방 동료와 대화하는 장면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세면실 장면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는 시간, 옆방 동료와 이야기 하는 시간, 세면실로 나가서 그들과 눈짓, 쪽지를 교환하는 시간은 하루를 단위로 계속 반복된다. 이러한 반복은 퐁텐느의 결연한 의지, 동료들의 응원과 걱정, 그리고 내러티브상에서의 탈출 동선의 예비를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온갖 걱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준비하는 퐁텐느의 행위는 반복을 통해 계속 의미를 얻어간다.

3. 내레이션
마지막 시련(사형언도)이 닥치고 망설임 끝에 드디어 탈출을 시도할 순간이 왔는데, 사형 언도를 받고 돌아온 날 예기치 않게 새로운 감방 동료가 생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죽이고 가느냐 함께 가느냐, 내적 고민에 빠지게 된다. 결국 함께 가기로 결정한다. 전쟁이라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영화는 내적인 갈등, 내적인 투쟁, 내적인 의지가 중점이 되는 영화다. 도입부의 구타 장면을 빼면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퐁텐느를 괴롭히는 독일군은 없다. 사형수라는 상황만이 있을 뿐이고,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탈출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계획과 의지에 따른, 즉 자신과의 싸움이다. 영화는 이렇게 사건보다 묘사가 중심이고 내면의 갈등을 드러내기 위해 내레이션을 쓰고 있다. 망설임, 갈등, 의지 모두가 내레이션과 얼굴 클로즈업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정조는 외부와의 갈등이 폭발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탈출 장면에서도 이어지는데 독일군과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장면에서도 독일군을 죽이는 장면은 보여지지 않고, 고독한 갈등, 결정, 실행으로 모든 단계를 극복하고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평화롭고 고요하게 환호한다.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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