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1일 토요일

앙드레 케르테츠

맨처음 접한 그의 사진은

'몬드리안의 집'이나 '몬드리안의  파이프와 안경', '포크' 같은

정물화 같은 사진들이었다. 이 사진들은 회색빛이 아름다울 정도로 다채롭고(저렇게 작은 프레임 안에 저토록 많은 질감과 색감(회색의 계조)을 담고 있는 생활의 공간이라니!),

기하학적인 선과 면이 고요하게, 또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좋다. 게다가 저 생화처럼 생생하게 보이는 꽃이 나무꽃이라니 마치 페이크 다큐를 본 듯한 느낌,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몬드리안의 집, 앙드레 케르테스, 1926

몬드리안의 파이프와 안경, 앙드레 케르테스, 1926

 

 

그런데, 내가 앙드레 케르테츠를 다시 보게 만든 사진들은

당시 시대적 상황, 정확하게는 파리에 근거지를 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사진들이었다. 다다, 초현실주의의 향기.

 

왜곡 no.70,앙드레 케르테스, 1933

 

[헝가리의 시골에 사는 동안, <스케르초를 표현하고 있는 내 동생>(1919) 같은 작품에서 케르테스는 움직이는 신체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법을 배웠다. 어른거리는 빛에 민감한 그는 놀라운 작품 <수영하는 사람>(1917)을 만들어 냈다. 십 년 후 파리에서 그는 둥근 창을 통해서 본 초상을 찍었다. 그리고 1929년 루나 파크에서는 자신과 <뷔>의 카를로 림이 변형된 거울에 비친 형상을 찍었다. 주간지 <르 수뤼르>의 편집자 케렐이 '장르를 혁신할 만한' 누드를 찍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왜곡'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 초기의 사진들을 참조할 수 있었다. 두 러시아 모델 나인스카야 베라카츠와 나디어 카시네가 포즈를 취해 주었고, 1933년 3월 2일자 <르 수뤼르>에 열두 장의 사진이 실렸다.  - 열화당 사진문고 앙드레 케르테스 p.86]

 

기억의 영속성, 살바도르 달리, 1931

 

왜곡 시리즈는 늘어지는 시간들,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 시간들, 혓바닥, 꿈을 표현한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아주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2004년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케르테츠의 <수영하는 사람>(1917)

 

수영하는 사람, 앙드레 케르테스, 1917

 

[케르테스는 에스테르곰에서 회복하는 동안 수중 마사지와 물리치료를 받았다. "수영장의 물이 찬란한 푸른색으로 빛났다. 다른 사람들과 수영장 가에 앉아 있었는데,갑자기 물 위에 반사되는 빛과 약간의 움직임을 보았다." 3.5*4.75인치 유리원판 카메라로 찍은 이 사진은 원래 좀더 컸으나, 동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수영하는 사람 주위를 조금 잘라내고 옆으로 약간 틀었다. 1920년에서 1930년 동안에 바우하우스에서 반사의 미학(거울, 유리구술, 자동차의 크롬 장식 등)을 대중화시켰는데, 그것은 현대 예술운동의 동기가 되었다.   - 열화당 사진문고, 앙드레 케르테스 p.24)

 

 

 

나는 케르테츠의 모던한 정물사진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보다 먼저, 그리고 더 기하학적으로 조형적 찰나를 잡아낸 스냅사진도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아방가르드(다다, 초현실주의를 포함하는)의 자장 안에 놓인사진들이 가장 좋다.

 

이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2004년에 서울아트시네마 (구.아트선재, 현.시네코드)에서 봤던 '프랑스 아방가르드:장 앱스탱, 장 비고, 장 콕토 회고전'이 생각났다. 장 콕토의 (미안하지만 지루했던) 영상시들 중에 반짝이는 물빛 아래에서 수영하던 남자, 꼭 이런 장면의 모음으로 된 영화가 있었다.

 

그 때 나는 또 장 비고의 <품행제로>를 보고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가 장 비고 <품행제로>에 바치는 오마주의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포스팅은 우연히 장 콕토와 장 마레의 사진을 찾으면서, 콕토를 생각나게 하는 '수영하는 남자' 사진이 떠올랐고, 2004년의 시간을 한번 더 추억하는 의미에서 쓰게 됐다. 2004년엔 달리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와 프랑스 아방가르드 회고전이 열렸다.

 

2004년은 조금은 아방가르드한 해였던가. 별로 그렇게 기억되지는 않지만, 그들 기준으로 far east에 사는 내가 1930년대 파리에 함께 있었던, 또 초현실주의를 이끌거나 영향받았던 달리, 장 콕토, 앙드레 케르테츠 작품들의 연결고리를 상상할 수 있도록 소스를 준 해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