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4일 토요일

<싱글맨> 에로스에 매혹당한 타나토스



사랑을 잃고 그는 죽음을 준비한다. 정갈하게.
조지(콜린 퍼스)는 16년 동안 함께 살아온 동성 애인 짐(매튜 구드)의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을 듣고 죽음과 같은 잿빛 일상으로 접어든다.

사랑하는 이의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한, 정확히 말하면 참석을 거부당한 조지의 심상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애도의 기회를 얻지 못한 자의 멜랑꼴리의 정조로 가득차 있다. 잿빛 정적과 같은 화면들... 혼자 남은 자의 시간은 쓸쓸하게 흐른다. 그의 시간은 쿠바미사일 위기가 있던 어느날이자, 이성애 가족들만이 '밖으로 나와 있던' 1962년이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는 매우 관능적이고 감각적이다. 마치 타나토스(죽음 충동)와 에로스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웅변하듯, 어쩌면 타나토스가 에로스의 방아쇠라도 되는 것처럼. 절정에서 죽음을 맞는 절정의 순간처럼...실제로 조지는 생명(또는 관능)이 아름답게 피어오른 밤, 다시 살아갈 것을 결심한 순간, 죽음을 맞는다. 얕게 보면 아이러니한 순간이지만, 깊게 보면 너무나 본질적인 생의 찰나가 아닌가.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눈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이 교환되고,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입술이 응시된다. 출렁이는 근육이 물결처럼 꿈처럼 떠오른다. 섹스신 하나 없이 색채와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물속에서 부유하는 나신의 이미지들로 이토록 관능적인 영화를 만들어내다니.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꽃이 피어나듯, '제임스딘보다 멋진 얼굴'을 가진 남자가 내뿜는 담배연기가 얼굴에 닿는 순간, 조지의 얼굴은 생명의 빛을 띠고, 그를 걱정하는 제자 캐니(니콜라스 홀트)가 등장할 때 다시 한번 '또 다른 생'을 기대한다. 아름다운 소년과 바다에서의 마지막 유영, 그건 펄떡이는 생명과 관능 그 자체이고,  동시에 죽음을 불러오는 결정적 방아쇠이기도 하다. 결국 타나토스(죽음충동)와 에로스는 서로를 밀어올려 하늘에 닿는다.



이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디자이너 톰 포드의 데뷔작이다. 영화는 매우 감각적으로 표현되었지만,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답게 60년대 미국 동성애자들의 위태로운 존재조건에 대한 언급도 등장한다. 이는 옷장 속에 숨어있는 대학교수인 조지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는 마치 액티비스트의 영화처럼 한 게이 학생이 당황하는 모습을 곤란할 정도로 계속 보여준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저런 학생인가. 저런 사람을 보면 당신은 불편하고 혐오하고 차별하고 있지 않나. 자꾸 묻는 것만 같다.)

강의 내용을 약간 옮겨본다.

"소수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다양한 소수가 있지, 금발머리, 주근깨가 있다든지, 하지만 소수란 다수로부터 어떤 위협이 가해짐으로 생기는 개념이지, 거기에 두려움이 존재한다. 소수가 어떻게든 보이지 않게 되면 그 공포심은 더 커지지. 두려움이 소수를 괴롭히게 하는 거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 이유는 공포심이고 소수도 사람이다. 우리와 같은. 공포심에 대해 얘기해보자. 공포심이 사회를 조종하고 있다. 정치가들이 이용하는 방식. 공격당하는 두려움. 모퉁이마다 공상당원이 잠복해있다는 두려움. 흑인문화 확산에 대한 두려움... 늙어가고 혼자라는 두려움..."

또 하나.

조지와 짐의 흑백 장면은 그 옛날 아방가르드 작가 장 콕토와 그의 연인이 되었던 장 마레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떠올리게 하는데, 둘을 비교해 보면 이렇다. 왠지 감동적이지 않은가...20세기 초와 21세기 초의 그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왠지 짠했다.  


영화 <싱글맨> 중에서


1939년 아주르 해변에서 장 마레와 장 콕토.

원작이 있는 영화는 늘 영화를 본 후에 원작을 읽고 싶어지는데,
<싱글맨>은 그저 영화 버전의 잔상을 오래 남겨두고 싶은 작품이다.
위태롭고 쓸쓸해 보이는 콜린 퍼스의 뒷모습...수줍은 눈빛, 중년의 고요.
보고 느끼기를 강요하는 클로즈업들...(때론 너무 심하게...그래 알았어요. 섹시하다고요...)
줄리앤 무어가 너무 평면적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니콜라이 홀트와 매튜 구드 그리고 제임스딘보다 잘생긴 남자까지...캐스팅도 완벽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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