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9일 토요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단계에 진입하면서 인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주 복잡한 감정을 말하고 싶은데, 그저 '사랑한다' 거나 '미안하다'거나,, 그렇게 '레디 메이드'된 단어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미치도록 사랑한다'거나 '죽도록 미안하다'  정도랄까. 그나마 '시적 허용'이라는 이름으로 시에서, 혹은 '영화적'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에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어떤 것, 'the thing'을 찰나적으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언어적으로 계승한 라캉, 그리고 크리스테바 등의 철학자들이 나름의 단어로 정의내린 '잃어버린 그 무엇'. 그것은 '대상a', 또는 '코라'라고 이름 붙여진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을 보면, 그렇게 잃어버렸던 희열, 갈망 등을 아주 집요하게 묘사해 놓았다.(나는 아직 1권밖에 읽지 않았기 때문에. 집요하게 써진 그 오이디푸스 욕망의 궤적을 따라가다가 내 어릴 적 생각도 나면서 혀를 내둘렀다. 집요해 너무 집요해.) 그리고 크리스테바는 <반항의 의미와 무의미>에서 프루스트가 언어 이전의 욕망을 아주 잘 묘사했음을 언급하고 있다.(물론 작품 전체를 통틀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일, 즉 잃어버린 그 무엇을 규명하거나 재현하는 일이 예술가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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