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물 속의 칼(로만 폴란스키, 1962)

물 속의 칼 (로만 폴란스키, 1962)    

 
인물 설정과 클로즈업
롱테이크로 찍힌 첫 장면. 차 안에 앉은 채 어둠 속에서 등장한 두 사람은 점차 밝아지는 화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부부지만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대사 없이 제시되는 도입부는 무성영화처럼 손짓, 표정 등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낸다. 매사에 아내를 무시하는 권위적인 남편과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아내. 현장 사운드를 지운 끈적한 음악이 애증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을 부연해준다. 이렇게 인물 소개가 끝나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청년을 태우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영화는 청년의 등장으로 프로이드의 가족로망스 삼각구도를 띠게 되고 캐릭터는 더욱 분명하게 설정된다. 중년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권력을 과시하고 지배하려 하고, 여자는 예속돼 있지만 탈출이나 일탈을 꿈꾸고, 청년은 ‘아버지의 법’을 거스르려 한다. 이런 관계를 강조하는 대사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함께 쓰인다. 왜 자꾸 지시하냐는 항의에 “배 위에 두 명의 남자가 있고 한명은 선장이니까” 라고 고압적으로 말하는 중년남자의 얼굴, “사실을 인정해요, 당신이 그 애를 빠뜨렸잖아요”라고 추궁하는 여자의 얼굴이 그러한 예다.
 
스릴
영화는 요트라는 폐쇄되고 제한된 장소에서 스릴을 만들어낸다. 누군가 강물에 빠져 죽어도 공모한 두 사람이 입을 다문다면 완전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출발하자마자 청년의 칼이 등장한다. 칼은 스릴을 유지하는 맥거핀이자 권력의 상징으로 보인다(오인된다). 칼을 차지하는 자는 누구인가? 관객의 시선은 칼을 좇게 된다.
 
시선
카메라는 계속 한 사람의 머리나 다리, 등을 걸고 앞의 두 사람, 혹은 한 사람을 보여준다. 관객은 뒷모습을 보이는 인물(주로 중년남자, 청년)의 표정과 감정을 상상하게 된다. 갇힌 프레임의 이런 장면들에서 시선을 가진 중년남자의 불안, 청년의 질시 같은 감정이 짐작된다. 반면, 여자는 단독으로 이들을 지켜보는 장면이 많이 잡힌다. 거의 청년을 걱정하거나 의식하는 숏이다. 미세하지만 욕망을 읽을 수 있는 장면들이다. 여자의 나신을 훔쳐보는 청년의 시선은 이에 대응한다.
 
상징
여행의 초반에 부감으로 찍힌 단독샷은 상징적인데, 여자는 길게 뻗은 키를 잡고 있고, 중년남자는 엎드려 지도를 보고 있으며 청년은 속옷만 입은 채 젊은 육체를 전시하고 정면으로 누워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중년남자의 결정을 좌지우지할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결국 여자라는 것을 떠올려본다면 영화의 1/3 지점에서 키를 쥐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결국 궁극적인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거짓말만 하고 난 그걸 믿는 척하고 그리고 나서 신문을 읽지”(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의 대사)
 
그렇다면 ‘물 속의 칼’은 누구인가
‘물 속의 칼’은 아무 것도 벨 수 없는 무력한 권력을 상징한다. 두 남자의 경쟁관계에서 실제 칼은 이동하는데, 그 시점은 권력관계가 역전될 때다. 젊은 남자가 배의 꼭대기에 올라 헬야드를 고치고 있는 ‘능력’을 보이는 사이 혼자 잠에서 깨 두 사람을 찾아나선 중년남자는 칼을 주머니에 넣는다. 칼을 손에 쥔 사람이 더 약한 사람이다. 칼이 물에 빠진 후에는 봉합돼 있던 위기의 본질이 속살을 보이며 중년남자가 ‘물 속의 칼’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영화 초반부의 약자는 청년이다. 청년이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다. 수영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이다. 모든 지식과 권력은 중년남자에게 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나자 청년은 배에 대한 지식을 갖고, 수영도 할 줄 아는 숨겨진 면모를 보이며 남편과 말다툼 후에 혼자 남겨진 여자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남편의 부재 속에서 여자와 청년은 욕망을 실현하고 자유로워진다. 물론 이 자유는 일시적인 것이며, 결국 청년은 사라지고 여자는 남편과의 관계를 봉합한다. 자유롭게 풀어헤친 머리는 다시 단정하게 가리고 중산층 가부장 질서 속으로 차를 몰아 돌아간다. 남편의 행동을 결정할 취사선택된 진실을 들려주는 역할은 여자의 몫이다. 결국 여자는 진실을 말하지만 남자는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의 동인인 자만심 때문에 그녀의 말을 ‘기분나쁜 농담’ 쯤으로 오인한다. 영화는 특별한 움직임 없이 정지한 차를 뒤에서 비추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한쪽 길을 선택하지 않은 고정된 상태가 이들 관계의 순환을 상상하게 한다.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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