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5일 월요일

[다큐멘터리 모래 리뷰] 근대화의 종착지, 중산층 가정, 모래땅 위에 지어진 집


근대화의 종착지, 중산층 가정, 모래땅 위에 지어진 집

<모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사는 감독 본인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강유가람 감독은 첫 번째 작품인 이 영화로 2011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다큐멘터리최우수상, 2012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개인적인 인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과 비슷한 또래에다 비슷한 동네에 위치한 대학을 다녔고, 대학교 때 각자의 학교에서 학생운동과 여성운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우리는 시민단체 성격의 연구소에서 2년간 함께 근무한 직장 동료였고, 지금은 영화일을 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굳이 감독과의 친연성을 밝히는 이유는 은마아파트의 재건축을 염원하며 거액의 부동산 담보대출을 감당하고 있는 그녀의 부모님과 가족의 형태가 IMF 경제위기를 겪은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는 사회학자들이 ‘신중산층’이라고 이름 붙였던 ‘계층’의 인류학적 연대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감독과 필자는 한국전쟁 이후 50년대에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들인 2차 베이비붐 세대이자, 80년대에 자식교육을 위해 강남 8학군에 입성한 중산층의 자식들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80년대 후반, 부동산 경기 붐을 타고 부천에서 서울로 이사했던 우리 가족은 97년 경제위기 이후  중산층이 상층과 하층으로 미분화되던 과정에서 ‘중산층’을 완전히 이탈했고, 이후 정신적, 물리적으로 흩어졌다.







“쌤은 어디 살아요?”
“대치동 은마아파트요”
“어, 거기 되게 비싸고 좋은 동네 아니에요?”
“아뇨, 집이 많이 낡아서 뜨거운 물도 잘 안 나와요.”

 몇 년 전, 한 직장 동료가 물었을 때 앞으로 이 영화를 만들 미래의 감독은 은근한 선망의 뉘앙스를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답변에서 ‘그건 오해에요’라고 설명하고 싶지만 오해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체념적 수긍의 뉘앙스와 함께 ‘면구스러움’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그 ‘면구스러움’의 정체가 설명되어 있다. 80년대 분양 당시 2천만 원이던 은마아파트는 20년 동안 마흔 배 이상 올랐고, 감독은 집값 올라 좋겠다는 이야기가 “부당하게 오른 집값이 부끄럽지 않냐"는 말로 들려 종종 다른 동네에 산다고 얘기했다고 고백한다.

 감독의 아버지는 70년대 중동 건설현장에 파견된 ‘산업역군’이었다. 한국경제는 75년부터 4년 넘게 호황을 맞았는데, 중동 건설특수와 부동산 경기과열이 주요 동인이었다. 이후에도 84, 85년의 경제침체를 제외하고는 88년까지 한국경제는 급속한 성장세를 보였다.1)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 교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강남 아파트촌 건설의 역사를 추적하는 동시에 이곳에 입주한 사람들의 생활사를 픽션으로 재구성한다. 1970년대 잠실과 반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한강변을 따라 횡축으로 자리 잡고 198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개포동-대치동-압구정동으로 이어지는 아파트 단지가 강남의 종축을 가로질러 완성되는데, 주로 국민주택 규모(25평형,32평형)의 고층 아파트에 들어온 사람들은 후에 ‘신중산층’으로 불릴 ‘조국근대화’의 자식들이다. 바로 모래 위에 건물을 올려 중동 건설특수를 일으킨 감독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도 여기 해당된다. 그리고 지어진 지 30년이 넘어 낡고 허름해진 은마 아파트는 한 때 ‘동마 아파트’가 되었다가, 10여 년 전 재건축이 확실해지자 ‘금마 아파트’로 탈바꿈했다.




 <모래>는 몇 십 년간 지속된 한국사회의 부동산 불패신화,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시세변동 폭으로 신화가 된 ‘은마 아파트’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뉴타운 등 전면재건축 방식의 도시개발이 불러온 용산참사와 부동산 버블 우려 등의 사회적 맥락이 이 영화에 대한 흥미를 돋운다. 그러나 <모래>는 ‘강남 재건축’을 ‘자본의 탐욕’이라든가, ‘투기’라고 지적하는 평면적인 사회고발성 다큐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편에서  ‘강남 재건축’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한 가족의 ’사정’ 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강남재건축’을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비난했던 관객은 그들에게 최소한의 행복이 보장되길 바라며 딜레마에 빠지고, 사회가 본보기로 제시하는 주류의 모델을 따라 부동산을 샀던 관객은 떨어지는 시세에 울고 웃는 감독의 부모님에게 감정이입 하게 된다.


 감독에게 강남은 쉽게 비난할 수 있는 '타자'가 아니며 생활의 터전이다. 그 터전은 아버지가 20년 동안 다니던 건설회사가 IMF 때 부도나자, 사업자금을 대출받을 있게 해준 고마운 자산이며, 자식들의 고등교육을 위해 고민 끝에 선택된 희망의 공간이다. 동시에 정치적으로 올바르고자 하는 감독 본인의 삶을 균열시키는 물질적 토대다. 감독의 부모님은 "담론의 가상 세계에선 언제나 패배하지만 물질의 현실 세계에선 백전백승"2)인 아파트의 위력을 ‘근대화과정’을 통해 직접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다. 답십리 동아아파트를 직접 지으며 쫓겨나는 사람들을 눈으로 봤던 아버지는 그 스트레스로 당뇨병까지 생겼다. 그리고 뉴타운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구체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살고 있는 은마 아파트는 빨리 재건축되기를 바라며 개발이익을 챙겨주겠다는 보수정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모순되지만 평범한 사람이다. 자식들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던 어머니는 월 500만원의 대출이자를 감당하며 나날이 기울어가는 장사를 지탱하기 위해 오늘도 새벽시장에 출근한다. 감독은 어두운 표정의 어머니에게 웃음치료학교에서 배운 ‘하루 세 번 웃기’를 해보라고 권하고 어머니는 크지만 마른 웃음을 웃어본다. 이런 일상을 지켜보며 감독은 어느새 이 아파트가 빚을 갚고 전세값이라도 남길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빨리, 비싸게 팔렸으면 좋겠다고 자신도 모르게 바라게 된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결국 아파트는 팔리고, 이들은 아버지가 지었던 답십리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아버지의 모습은 종종 희극적이고 어머니는 대부분 절망적이다. 아버지는 모래땅에 건물을 지었던 젊은 시절의 사진을 슬라이드 환등기로 돌려보며 추억에 잠긴다. 진보정당과 전교조를 ‘니들이 나라를 위해 한 게 뭐야’라고 비난하고 동시에 각종 경제적 부담에 짓눌려 술을 마시지만, 혼자서 트로트를 부르며 답답한 가슴을 치는 것으로 절망적인 상황을 헤쳐나간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 자식들을 키워놨지만 앞이 안 보이는 긴 터널의 중간에 있는 듯 표정이 어둡다. 대학원 공부까지 마치고도 영화감독을 꿈꾸며 부모님의 생각대로 살지 않는 감독은 ‘폐를 끼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부모님과 다른 삶을 꿈꾸는 걸 포기할 수 없다. 유학생활 중 결혼을 한 동생은 아이를 낳고 또한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너 때문에 내가 산다’는 마음으로 60해, 30해를 넘기며 열심히 살아왔던 <모> 속의 가족은 아버지가아올린동에서의 건물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모습이다. 또한 <모래>라는 제목은발적제성장과동산수라는 맥락에서 형성된 한국사회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 모델이 사실은 가닿을 곳 없는 모래땅 위에 세워진 집이라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



2012년 7월호 월간 주민자치에 실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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